[주일설교] 복음의 진리 4 – “성령의 능력”

[주일설교] 복음의 진리 4 – “성령의 능력”

복음의 진리 4 -“성령의 능력”
갈라디아서 3장 1절~5절
도상원 목사님
오늘 본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이여.’로 시작합니다. 무엇이 바울선생님으로 하여금 갈라디아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복음의 종교인 기독교를 율법의 종교로 바꾸려는 성향에 대해 지적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감사함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세상이 주는 율법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외모와 건강에 대해, 물질이나 학력에 대해 관심을 두고 열심히 노력하여 인정을 받으면 그것이 곧 구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이치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적용합니다. “내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바울선생은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종교와 복음의 진리는 세상의 율법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절 말씀에 ‘성령을 받았다’와 5절 말씀에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신다’ 를 통해 성령의 능력과 복음이 관계가 있다고 하십니다. 율법은 성령의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약 15년 전에 ‘메이트릭스’라는 공상 과학영화가 있었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인공지능을 주제로 삼아 사람이 컴퓨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의식이 컴퓨터에 연결되어 그 안에서 삶을 사는, 일종의 Virtual Reality를 존재하게 합니다. 이때 키아누 리브스라는 배우는 컴퓨터 세상을 정복하고 사람들에게 자율권과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구세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게 키아누 리스브는 바이러스이고 그를 대적하는 백신인 안전요원들에게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살아나 전보다 더 많은 능력을 소유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흔히들 병 고침,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것들을 생각하지만 거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육신 가운데 살고 있지만 주님이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상을 이기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조정하는 모든 율법의 가치를 어긋나게 하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병 고침, 환상, 방언들 모두 성령의 능력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이 임하시면 환경과 조건에 관계없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윤리와 방식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 이러한 열매들을 맺고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님은 ‘일만 가지의 방언보다 한 마디의 예언이 중요하고 너희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만큼 중요한 것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성령님이 임하게 될 때 우리 마음 속에 모두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내 것만 내 성공만 생각하며 율법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어떻게 해야 내 인생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 인정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기적과 초자연적인 성령의 능력도 귀중하지만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나가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이 성령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에게 임할까요? 유대인들처럼 율법의 행위에 충실하고 거룩하고 정결한 음식을 먹는 것 등에 관심을 가져야 성령의 능력을 받나요?
갈라디아서 3장 1절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바울선생님은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현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라고…… 당시 지역적으로 갈라디아와 예루살렘은 거리가 있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도 한참 후였습니다. 그런데 ‘밝히 보이거늘’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은 Portrait 즉 그림처럼 잘 그려져 있는데 그것을 보면서 어떻게 십자가의 은혜를 율법의 행위와 상관있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밝히 본다’ ‘Portrait 되었다’는 것은 십자가의 사건을 듣고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살아서 역사하는 입체적인 형태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고 믿어서 확증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밝히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은 세상의 율법과 모든 통념을 깨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사랑해주셨어요. 세리 삭개오에게 “오늘 내가 너의 집에 유하겠다.”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하셨습니다. 율법의 사닥다리 기준으로는 저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셨어요. 자격이 없는 자들을 껴안아주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영화 ‘메이트릭스’ 얘기로 돌아가면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 안에서 살다가 예수님이 오셔서 연결되었던 그 플러그를 빼주신 것입니다. 생명을 얻은 것이죠. 그러자 중요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죄악들을 벗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뙤약볕에 나와 물을 긷던 여인이 있었지요.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플러그를 빼주시자 부끄러움 없이 맨발로 뛰어나가 예수님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생명이 없음을 꾸중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실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돈, 건강, 생명, 자식문제 등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들보다 더 귀중한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겨지고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사람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십자가를 통해서 이 세상에 침투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영원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영생을 받게 되면 우리를 괴롭혔던 문제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경제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건강 등 모든 것들이 우리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십자가를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지 않고 세상이 주는 염려와 고민 즉 노후에 대한 걱정,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고 인정 받을까, 내 자존심을 지킬까 등을 생각하며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을 묵상하기보다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을 묵상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붙들려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플러그를 빼주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세상을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아도 되는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John Piper라는 목사님이 쓰신 글을 소개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토록 보존하리라.’ 이는 적어도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삶을 위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좋게 말한다고 해도 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많은 것을 가졌다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적게 가졌다 해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핍박을 당하거나 속임을 당하여도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 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신이 죽게 된다 할지라도 이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분의 뜻대로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렇게 바뀌어지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내가 잘못한 것을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교회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되어서 내게 중요했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것이 회개의 목적인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일, 공부, 결혼 등 답답한 문제들이 많았을 때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십자가로 저를 인도해준 찬양이 있었습니다.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입니다. 이 찬양의 2절은 더 은혜가 됩니다.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 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주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지켜주소서.
이 찬양을 부르면 내게 그렇게 중요한데 풀리지 않던 모든 문제들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주님이 저를 안아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 찬양을 불러보세요. 성령의 능력과 평안이 옵니다. 환경은 바뀐 게 없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능력이 옵니다. 열심히 해야 능력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내 힘으로 뭔가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너희의 눈 앞에 밝히 보이는 것을 어떻게 알지 못하느냐! 그것을 바라볼 때 영원한 생명이 오는 것을 경험하고서도 율법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십자가는 은혜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허망한 것들을 붙잡고 신경 쓰고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혹은 허망한 것 좀 잡았다고 세상 쾌락과 편안함만 추구하며 살지 마세요. 영원한 참 생명은 우리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것을 받게 하시는 통로이고 그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새 힘을 얻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 성령의 능력이 나를 미워하고 때리는 사람을 웃으면서 불쌍히 여기고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게 합니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쁨으로 참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밝히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